“ 그대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도록 되뇌었다. 도망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마주하고 직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겪은 환청과 환각,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몇몇 사건들은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감정의 균열은 점점 커졌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균열 아래에 끝없이 내려가는 느낌에 휩싸이곤 했다. 처음에는 남을 탓하거나 외면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어둠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직면이었다. 어쩌면 모든 회복의 시작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 작업은 일종의 자서전이자 치유의 기록이다.
‘심연’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나만의 질서를 재구성하여 풍경으로 풀어낸다.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며 때로는 허무했던 감정들이 특정한 색과 구조, 풍경 안에서 자리 잡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상처’가 아니라 ‘이해’가 된다.
붉은색은 불안과 절망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치열하게 살아 있으려는 나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림 속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닌 끝없이 나를 붙자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심리적인 힘이 있고, 그 속에서 나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묵묵히 걸어 나간다.
모든 이미지는 내가 실제로 겪고 느낀 것들에서 출발했다. 그것들을 회화적 언어로 다시 구성하며, 나는 나를 조금씩 회복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람객이 내 작업 앞에 섰을 때, 나는 조용히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
이 작업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심연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의 심연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그 순간, 고통조차도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나는 내 삶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 선택의 흔적이자, 내가 나를 향해 던진 수많은 질문이 바로 이 작업이며 이 풍경들은 내가 머물렀던 감정의 장소들이고, 여전히 진행 중인 회복의 여정이다.